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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8 손 모양 만지며 촉감으로 '소통' 집에 갇힌 시청각장애인들 사회로 이끌고 싶어.jpg

시청각장애인 손창환(왼쪽)씨가 27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촉수화 전문가에게 수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손씨는

“하나님께서 나를 시청각장애인으로 살게 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느낀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심지어 앞을 볼 수도 없는 사람과 어떻게 인터뷰가 가능하단 말인가. 만약 청각장애인이라면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면 되고, 시각장애인이라면 시선을 맞출 순 없지만 묻고 답하는 데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손창환(52)씨는 보지도, 듣지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시청각장애인이었다. 인터뷰를 주선한 밀알복지재단에서는 촉수화(촉각을 활용한 수어 통역) 전문가가 동석할 거라고 설명했으나, 전문가를 통한 ‘통역’이 어떻게 이뤄질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27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이뤄진 손씨와의 인터뷰는 시종일관 순조롭게 진행됐다. 질문을 하면 촉수화 전문가가 그 내용을 수어로 표현했고, 손씨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전문가의 손 모양을 만지면서 촉감으로 질문의 뜻을 이해했다. 손씨가 수어로 답변하면 전문가는 곧바로 그 뜻을 해석해 주었다. 이런 과정 덕분에 비장애인을 인터뷰할 때처럼 질문과 답변은 빠르게 오갈 수 있었다.

 

손씨를 만난 것은 그가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에서 일하게 된 소감을 묻기 위해서였다. 헬렌켈러센터는 2019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청각장애인

지원센터로, 손씨는 지난 7일 이곳에 간사로 취업했다. 그의 주된 역할은 시청각장애를 지닌 이들을 상담하는 일. 손씨는 “내게 일자리를 내준 밀알복지재단에 많이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시청각장애인은 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이들을 직접 만나 사랑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손씨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인이었으나 앞은 볼 수 있었다. 다만 망막에 문제가 있어 시야가 좁았고, 그래서 곁눈으로 뭔가를 보는 게 불가능해 자주

고개를 돌려야 했으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엔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나빠졌다는 것. 손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제빵 기술을 배워 1998년 전남 순천에 빵집을 차렸다. 같은 해 청각장애가 있는 여성을 만나 결혼식도 올렸다. 그러나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2002년 가게를 접어야 했다.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오래 할 수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부부 관계는 나빠졌다. 싸움이 잦아지더니 2004년 아내와 갈라섰다. 당시 네 살이던 아들은 서울에 있는 형에게 맡겨야 했다. 호구지책은 있어야 하니 마흔 살이 돼서야 점자와 안마 기술을 배웠고 7년간 한 기업에서 안마사로 일하며 밥벌이를 했다.

헬렌켈러센터 취업은 손씨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예광탄과도 같았다. 월급을 받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에 다니면서 약사 시험을 준비 중인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월급을 받으면 열심히 저축해 아들에게 주고 싶다”면서 “아들이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 먹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어 “기회가 된다면 해외에서 열리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행사에도 참석하고 싶다”며 “해외 사례를 많이 배워 국내 시청각장애인의 삶을 개선하는 일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시청각장애인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그들의 삶이 달라지려면 우선 사회로

나와야 합니다. 그들을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장애 탓에 한때 신앙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20대 시절엔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마음엔 하나님을 향한 원망만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현재 그는 서울 종로구 영락농인교회(김용익 목사)에 다니고 있다. 손씨는 “세상의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 뜻만 좇겠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내가 겪은 일, 겪어야 할 모든 일이 주님의 은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인터뷰 말미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마음을 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악수를 하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손씨는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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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52265&code=231111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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